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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의 명인-웨스틴 조선호텔 정수주 주방장 이야기
관리자
2010-10-14 2749

소스·국물이 푹 스며들어야 제맛… 화교(華僑)인 나도 그렇게 한국 받아들여
서민음식에서 고급요리까지 千의 얼굴 가진 재료…
찌개 속 두부 맛없을 땐? 얼린 다음 넣고 끓이면 돼

각계 명사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을 풀어내는 '내 인생의 맛'. 이번 주인공은 웨스틴조선호텔의 정수주(丁秀朱·40) 주방장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명인(名人)' 자격을 획득한 정 주방장과 두부에 대한 추억을 나눈 인터뷰를 이야기하듯 들려 드립니다.

'동성관(東成館)'. 제 아버지께서 운영하셨던 중국음식점 이름입니다. 낮에는 손님을 받고, 밤에는 식구들의 잠자리가 됐던 그곳 작은 방에서 제가 태어났지요. 중국 산둥(山東)이 고향인 아버지는 열 살 무렵 형제들을 따라 한국으로 왔어요. 네, 저는 화교(華僑)입니다. 식당 하느라 바쁘셨던 부모님은 4남매 중 막내인 저를 챙겨줄 여유가 없었어요. 식당 탁자 밑을 기어다니면서 떨어진 자장면을 주워 먹고 자랐지요.

크면서 질리도록 먹은 게 자장면이었어요. 하루 두 끼 정도는 자장면으로 해결해야 했지요. 정말 먹기 싫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어요. 식탁 닦고 잔심부름하면서요. 중학교 1학년 때는 양파를 까고, 3학년 올라갈 때쯤 반죽해서 면 뽑는 걸 배웠어요. 제일 처음 만들었던 요리가 유산슬이었는데, 제 손으로 완성하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몰라요. 맛이요? 별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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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은 불 조절이 관건입니다.”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홍연’의 정수주 책임 주방장은“지나친 자신감은 스스로를 망칠 수 있듯, 너무 강한 불은 음식을 망친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집이 서울 신도림동이었는데, 어느 해 여름에 장마가 심했어요. 이웃집이 물에 잠겼다고 동사무소에서 성금을 걷으러 다녔죠. 아버지께서는 성금도 내고 집에 있던 밀가루도 듬뿍 퍼주셨어요. 이듬해 또 장마가 닥쳤는데 이번에는 1층에 있던 저희 집이 물에 잠겼어요. 밀가루는 다 젖어 못 쓰게 되고 온 식구가 쫄딱 굶게 된 거죠. 그런데 도와 달라고 동사무소에 가니 예전 그 직원이 그랬대요. "화교는 외국인이라 구호 대상이 아니다"라고요.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죠. "똑같이 세금 다 내는데 왜 안 되느냐"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휴대전화도 만들 수 있고요. 그래도 거래 은행에서 대출 받기는 힘들어요.

화교는 대개 부모가 하는 직업을 이어받아요. 관광가이드 아니면 요리 쪽이 제일 많아요.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인테리어 전문가였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일본으로 유학 가겠다고 졸랐어요. 어머니께서 "입학 서류 보내고 허가 날 때까지 잠시만 들어가 있으라"고 권해서, 호텔 중식당에 취직하게 됐어요. 정신없이 일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6개월, 1년, 2년. 그러다 깨닫게 됐죠. 이게 내 적성이구나, 하고요. 마치 제가 화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요리도 천직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받아들이는' 요리가 바로 두부 요리랍니다. 두부는 혼자서는 그다지 맛이 없죠. 같이 넣은 소스의 맛, 국물의 맛이 제대로 스며들어야 제 역할을 하니까요. 아버지께서 자주 두부 요리를 만들어주셨어요. 간장으로 맛을 냈는데, 짭조름한 맛이 기가 막혔죠. 간을 속으로 깊숙이 받아들인 두부만이 낼 수 있는 맛이었어요.

생각했어요. 나도 저렇게 받아들이고 스며들어야겠구나. 내가 화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한국에 스며들어야겠구나. 두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재료이기도 해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식이지만, 생크림과 샥스핀을 넣고 맛을 내면 1인분에 4만원이 넘는 고급 요리가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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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주 주방장이 직접 만든 두부조림. 가지와 쇠고기를 넣고 두반장으로 맛을 냈다. /이진한 기자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넣은 두부가 맛이 없을 때가 잦죠. 제가 맛내는 비법을 알려 드릴게요. 냉동실에서 얼린 두부를 넣어보세요.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국물이 스며들면서 찌개 맛이 고스란히 배게 된답니다.

제가 중국 음식 명인이 된 것도 한국적인 것이 제 요리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죠. 지난달 광둥(廣東)성 요리대회에서 명인 심사를 통과한 요리가 김치와 인삼을 넣은 양고기였어요. 잘게 다진 김치를 아래에 깔고, 두반장과 청양고추로 소스를 만든 후 튀긴 인삼을 살짝 곁들인 양고기구이였지요. 전 요리대회 나갈 때마다 김치와 인삼을 꼭 챙겨가요. 저는 한국의 화교 대표고, 중국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두 조국'을 잇는 뿌듯한 작업이니까요.

16년 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동성관은 문을 닫았어요. 하지만 나무 간판은 랩으로 싸서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직접 식당을 하게 되면 그 간판을 걸고 하려고요. 제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 한국의 식감도 살아 있는 특별한 두부를 먹으러 한번 들러주세요.

● 정수주는…

1970년 서울 출생.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중식당 '홍연(紅緣)'의 책임 주방장이다. 지난 7월 '중국 요리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골든셰프요리대회'에 출전해 개인 부문 특금상, 단체 부문 금상을 받았다. 중국의 주요한 요리대회에서 금상을 2개 이상 받을 경우 자격이 생기는 '중국 요리 명인'에 지난달 도전, 중국 정부가 인정한 '명인(名人)'에 올랐다. 우리나라 조리사 중에서는 11번째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은 '홍연'에서 선보이는 그의 요리를 두고 "중국 요리에 대한 예상을 뒤집는다"고 평가했다.

● 두부는… 기원전 200년경 발명, 淸 건륭제가 즐겨 먹어

'맷돌 위에서 진귀한 즙이 나오고, 솥에 끓이니 꽃을 피우더라.'

요즘에는 흔하게만 생각되는 두부를 두고 중국 당나라 시인들은 '꽃'이라고 읊었다. 제조·성형법이 발명된 것은 기원전 200년경으로, 한(漢) 고조 유방의 손자인 유안(劉安)이 시초라고 한다. 1590년 명나라 약학자 이시진이 편찬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두부가 언급됐을 정도로 일찍부터 영양가를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지만 한때는 궁중에서 즐겨 먹었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건륭제(1711~1799)가 좋아한 음식이다. 당시 지방관청 연회에는 두부 요리가 20여가지 차려졌을 정도로 조리법도 발달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진 것은 중국(송·원나라)과 교류가 원활하던 고려 때로 짐작된다('음식잡학사전'·윤덕노 著). 고려 말 학자 이색(李穡·1328~1396)이 쓴 '목은집(牧隱集)'에 "두부는 새로운 맛을 주어 늙은 몸 양생하기 좋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발달해 일본에 기술을 전수했다.

미국에 두부를 처음 전한 것은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1770년 1월 영국에서 콩을 얻은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에서 식물원을 운영하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콩을 갈아 소금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간수로 응고하면 치즈처럼 된다"고 알려줬다('된장 인사이드'·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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